무용은 보편적 현상으로 모든 시대 모든 나라에 존재한다. 현재에도 어떤 형태로든 무용을 갖고 있지 않은 국민은 없을 것이다. 즉, 무용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해온 무용은 타 예술과 비교하여 볼 때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표현체가 신체 자체라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무용은 인간의 감정이나 감각 그리고 사상을 인간의 신체활동에 의해 공간형식을 통하여 표현하는 예술이다. 인간 개개인의 내면적 정신작용을 신체의 느낌으로 전환하여 표현하는 움직임으로 규정하였다. 기독교무용을 정의해보자. “기독교 무용은 인간의 신체움직임을 통해 기독교의 사상과 종교적 체험을 인식하고 새로운 감각의 표현을 종교적 가치 판단에 의해 나타내는 예술이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의 차별성을 갖는 것처럼 기독교무용 역시 다른 종교와의 차별성을 갖는다. 그 차별성은 성서에 있다. 기독교 무용이 표현하려고 하는 사상과 종교적 체험과 가치판단은 반드시 성서에 근거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독교와 다른 종교를 구별하는 기준이 바로 성서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무용이 성서에 나타난 사상과 종교적 체험을 표현하고 종교적 가치판단을 나타내는데 이 모든 것의 주인공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가운데 활동하신 모습을 성서의 여러 기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였다. 성서는 비록 여러 사람의 기록이지만 거기에는 일관된 주제가 흐르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구원’ 또는 ‘인간의 해방’이다. 성서의 주제는 ‘인간의 구원’이나 ‘소외 극복’이고, 기독교무용도 성서의 주제인 ‘인간의 구원’이나 ‘인간의 해방’을 무용으로 표현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 춤을 추어라’고 명령하신 이 후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무용을 통한 예배에 대해 강조하시며 먼저는 내 자신이 철저한 예배자로 설 수 있도록 훈련 하셨다. 오늘 이 시대는 프로그램과 방법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찾으신다. 즉, 당신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신다. 그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고 일을 하신다. 하나님은 무용사역에도 동일하게 적용하셨다. 구약 성서의 가인과 아벨이 드린 예배 속에 하나님께 인정하신 예배에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셨다. 인정하신 예배속에 인정받은 예배자인 아벨이 있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이 아벨을 찾고 계시지는 않을까. 이 아벨이 없이는 진정한 예배도 드려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린 예배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통한 회개와 구원의 역사, 사명의 결단과 그 밖의 성령의 치유사역 등이 나타난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무용 사역에도 일반 예배 속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가 동일하게 일어난다. 그것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진정한 예배무용이 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앞으로 예배무용의 신학적 근거와 실제 공연 속 예배무용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일하시고 사용해 나가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기독타임즈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대전충청지역 대표 기독교주간신문사 기독타임즈( kd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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